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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읽을 거리] 비엠더블유 히스토리 파트 1 - 전쟁 그리고 회생

바이크 정보/바이크 히스토리

by aRTBIKE 2011. 8. 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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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프로펠러 모양에 바이에른의 상징인 파란색과 알프스의 상징인 흰색을 마주보게끔 배치한 엠블럼을 사용하는 메이커. 항공기 엔진 공장으로 시작한 BMW는 세계대전을 겪으며 발전을 거듭해 현재에 이르렀다.

 

수석 엔지니어인 '막스 플리츠'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개발한 플랫 트윈 엔진을 바탕으로 발전한 BMW,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1916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BMW는 1916년 뮌헨에서 창업자인 구스타프 오토와 칼 라프 등에 의해 항공기 엔진공장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항공기 엔진의 설계와 제조를 주로 했으며 '레드 바론'(붉은 남작)을 위시하여 독일의 초기 공군 장비를 만들게 된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독일은 산업 부문에 상당한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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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계 제1차 대전의 후유증은 물가 상승과 고가품에 대한 수요의 부족을 초래했고 이는 독일의 국내 산업 전반을 압박했다.

이는 자동차의 수급 부족 현상을 낳았으며, 결국 모터사이클이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대두 되었다. 다행히도 모터사이클 판매율의 80%가 BMW 제품이었다.

 

▲ BMW 최초의 모터사이클 R32의 모습과 설계도, BMW 모터사이클의 상징과 다름없는

   수평대향 2기통 박서 엔진도 여기서 출발하였다.

 

BMW의 최초 모델인 R32는 수석 연구원인 막스 프리츠에 의해 제작되어 1923년 파리 모터쇼 및 베를린의 독일 모터쇼에 데뷔하게 된다. 이 모델은 횡 방향으로 설치된 수평대향 2기통 엔진과 엔진에 직접 연결된 변속기 그리고 드라이브 샤프트 방식과 이중의 튜블라 차체를 탑재

하는 등 당시로는 최신 기술의 집약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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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32의 엔진을 스포츠 버전으로 변형, 개발한 R37. R37은 게르만 로드 챔피언십을 획득

   하는 성과를 냈다.

 

그 다음 해에는 R32의 엔진을 스포츠 버전으로 변형, 개발한 R37로 BMW는 사상 최초로 게르만 로드 챔피언십을 획득하게 된다. 곧이어 250cc 배기량에 최대출력 6.5마력을 지닌 BMW 최초의 단기통 모델인 R39가 출시되었다. 그 후 1926년에는 루돌프 슈라이쳐가 영국 6일 오프로드 경기(British Six Days Off-Road Championships)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BMW는 레이스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2년 후인 1928년, BMW는 최초의 750cc 급 모델인 R62를 출시했다. 이 모델은 1973년까지의 BMW 모델 중 최대의 배기량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경제 불황이 독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930년대, BMW는 아직 그 전성기의 중간에서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보다 작고 연료 효율이 우수한 새로운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BMW는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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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사이클 최초의 텔레스코픽 서스펜션을 적용한 R12, 1935년 발표되었다.

 

1935년에 BMW는 세계 최초로 댐핑 기능(서스펜션)이 내장된 텔레스코픽 전륜 현가장치를 적용시킨 R12를 출시한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최초로 크랭크샤프트를 동력원으로 수퍼차저 방식의 엔진을 적용한 BMW 레이싱 모델인 R5를 제작한다. R5의 박서 엔진은 완전히 개조됐으며 두개의 캠 샤프트가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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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W의 레이싱 모델, R5. R5는 크랭크샤프트를 동력원으로 수퍼차저 방식의 엔진을

   적용한 첫번째 모터사이클이었다.

 

그 후 1938년, BMW는 누적 생산 대수 10만대를 마크하며 지속적인 성장곡선을 탄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도 BMW는 회사의 규모나 공정을 줄이지 않았는데, 이런 회사의 선택으로 인해 BMW는 1923년부터 1939년까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전쟁 그리고 회생

 

그러나 세계 2차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모터사이클의 개발은 거의 이루어 지지 못했으며, 1952년까지 이런 상황은 지속되었다. 독일의 다른 산업부문과 마찬가지로 BMW 역시 1940년대 초반에는 전쟁 물자의 생산에 전념하다시피 했다.

 

이후 1941년에는 군사용 사이드카인 R75가 제작되었으며, 1948년에 250cc의 단기통 모델인 R24를 선보인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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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에 선보인 R24, 단기통 250cc 엔진을 얹었다.

 

독일의 패전 이후 BMW의 거의 모든 공장 시설은 파괴되었으며, 이마저도 연합군에 의해 대부분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독일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했으며, BMW는 이 시기부터 모든 부문에 걸쳐 생산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BMW는 짧은 기간에 모터사이클

제조사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 때 수제 경주용 자동차도 다시 생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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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2차 대전 이후, BMW가 내놓은 최초의 모델 R51/2 사이드카 버전

 

전후 최초의 모델인 R51/2이 출시되었으며, 양산 모델 중 최초로 최고시속 160Km를 넘은

R68도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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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모델 최초로 최고시속 160km를 돌파한 R68

 

1954년에는 빌헬름 놀과 프리츠 크론이 BMW 최초의 세계 사이드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획득했으며, 1974년까지 19회의 세계 사이드카 챔피언십을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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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W는 사이드카 챔피언십에서도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했다. 사진은 1969년부터 1974년까지 4번의 챔피언십

   타이틀을 BMW로 안긴, 크라우스 엔데르스와 랄프 엥겔하트의 모습이다.

 

이듬해인 1955년에는 R26, R50 및 R69를 생산하며, BMW의 새로운 풀 스윙암 현가장치를 적용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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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 스윙암을 적용한 R50, 리어 서스펜션과 스윙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추어 비행기 사업도 발전의 기미를 보이는 등 부흥의 조짐이 보였지만 50년대 말, 소위 독일 경제의 기적이 끝나게 된다. 결국 모터사이클의 판매가 부진해지면서 BMW는 다시 재정적인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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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발표된 R69S, 최고시속 175km를 실현시켰다.

 

1960년대는 BMW 모터사이클 부문의 성장이 매우 저조한 시기였다. 최고 시속 175Km를 마크한 복서 모델인 R69S가 시장에 출시되고, 1969년에 ‘/5’가 붙은 모델(R50/5, R60/5, R75/5)이 출시된 정도였다. 그러나 소멸 직전이었던 모터사이클 시장은 가까스로 회생하게 되었다.

BMW가 모터사이클 생산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공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에 뛰어들었고, 레이스에서의 뛰어난 기록과 시기적절한 제품 개선 그리고 각종 부대 성능의 개발이 바로 부흥의 원인이었다.

 

Part 2 에서 계속됩니다.

 

 

 

 

출처 : http://www.bikerslab.com/bbs/board.php?bo_table=project&wr_id=25&sca=%ED%8A%B9%EC%A7%91

출처 : Harley-Davidson
글쓴이 : 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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